인류학자 진주현 박사가 지난해 펴낸 책 ‘뼈가 들려준 이야기’에는 흥미로운 에피소드가 많다. 대학 1학년 때 우연히 ‘최초의 인간 루시’라는 제목의 책을 읽고 인류학에 꽂힌 저자는 결국 인터넷을 뒤져 호모 하빌리스 등이 발견된 고인류학의 성지인 아프리카 탄자니아 올두바이 필드 스쿨을 신청하기에 이른다. 이렇게 해서 2002년 여름 한 달 동안 발굴에 참여했다. 그러나 ‘혹시나’ 하는 기대와는 달리 동물 뼈만 찾았을 뿐 누구도 사람 뼈는 발견하지 못했다고 한다. 인류학자가 수백만 년 전 사람 뼈를 찾는다는 건 “전생에 나라를 구한 덕을 쌓지 않고는 여간해서 만날 수 없는 행운”이라고 진 박사는 쓰고 있다. 진 박사가 대학 신입생 때 읽은 책의 주인공 루시(Lucy)는 1974년 에티오피아 아파르에서 발견된 약 320만 년 전 화석으로 고인류학 역사에서 가장 유명하다. 전체 골격의 40%나 발굴돼 인류의 진화과정을 둘러싼 논란을 단숨에 잠재웠기 때문이다. 즉 직립이 먼저이고 뇌용량과 턱의 변화가 다음이다. 그런데 루시의 학명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Australopithecus afarensis)는 ‘아파르에서 나온 남쪽의 유인원’이란 뜻이다. 이런 이름을 붙일 수밖에 없었던 건 루시와 비슷한 고인류 화석이 이미 존재했기 때문이다. 즉 1924년 남아공 타웅에서 발견된 화석에 붙은 학명이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프리카누스(A. africanus)로 ‘아프리카 남쪽의 유인원’이라는 뜻이다. 루시가 발견된 에티오피아는 아프리카 동쪽이니 딱한 노릇이다. 이처럼 아프리카누스는 아파렌시스보다 무려 50년이나 먼저 발견됐음에도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했다. 무엇보다도 당시 고인류학계는 1912년 영국에서 발굴된 필트다운인에 홀려 있었기 때문이다. 뇌용량은 사람 수준이지만 턱은 유인원인 필트다운인은 인류진화에서 획기적인 화석이었다. 그러나 위조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필트다운인은 1953년 사람 머리뼈와 오랑우탄의 아래턱뼈, 침팬지의 송곳니로 재구성한 가짜임이 최종적으로 확인됐다. 1924년 남아공 타웅의 석회석 채석장에서 발견된 두개골은 이빨이 현대적이었지만 두뇌가 너무 작아 주목을 받지 못했다(다만 침팬지에 비해 앞짱구였다). 게다가 네 살쯤 된 아이였기 때문에 형태가 바뀔 가능성이 있다(그래서 ‘타웅 아이(Taung Child)’란 애칭을 얻었다). 두개골에서 등뼈로 이어지는 위치가 직립보행을 시사했지만 골격이 없어 무시됐다. 훗날 인정을 받은 뒤에도 살았던 시기가 아파렌시스보다 한참 뒤라서(타웅 아이는 약 250만 년 전으로 추정되는데 당시는 이미 호모속 인류가 살고 있었다) 현생인류의 직계조상은 아닌 것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1924년 남아공 타웅 석회석 채석장에서 발견된 약 250만 년 전 호미니드의 두개골 화석. 레이먼드 다트는 이듬해 발표한 논문에서 ‘타웅 아이’라는 애칭으로 부른 이 화석에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프리카누스라는 학명을 붙였다. ⓒ 비트바테르스란트대 1924년 남아공 타웅 석회석 채석장에서 발견된 약 250만 년 전 호미니드의 두개골 화석. 레이먼드 다트는 이듬해 발표한 논문에서 ‘타웅 아이’라는 애칭으로 부른 이 화석에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프리카누스라는 학명을 붙였다. ⓒ 비트바테르스란트대 벌집화석 보존 상태 좋아 아무튼 타웅 아이 발굴 뒤 아프리카누스 화석 탐사 프로젝트가 계속됐고 1940년대와 50년대, 90년대에 어른 머리뼈와 발뼈 등 추가발굴에 성공했다. 그 뒤 타웅 지역에서는 더 이상 호미니드 화석이 나오지 않고 있다. 따라서 인류학자들은 아프리카누스가 살았던 당시 환경에 대한 정보를 줄 수 있는 화석을 찾는 방향으로 전환하고 있다. 학술지 ‘플로스원’ 9월 28일자에는 지난 2010년 타웅에서 발굴된 벌집화석을 분석한 논문이 실렸다. 영국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 고고학연구소 제너퍼 파커 교수팀은 컴퓨터단층촬영(CT)으로 화석 내부를 분석한 결과 굴(통로)과 방으로 이루어진 벌집의 형태가 오늘날 단독생활을 하는 가위벌이 땅에 만든 벌집과 비슷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벌집이 포함된 화석시료는 가로 115cm 세로 50cm 크기로 벌집 표면에 노출된 방이 25개다. 방은 길이가 14mm 폭이 7mm 내외로 누에고치처럼 생겼다. 방들은 대부분 비어있고 몇 개는 퇴적물이 채워져 있다. 이런 벌은 꽃가루와 화밀을 모을 수 있는 속씨(현화)식물이 주변에 있고 직사광선이 닿는 건조한 땅에 집을 짓는다. 비가 자주 오는 지역을 경우 방 속에 있는 애벌레가 곰팡이에 감염되거나 익사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타웅 아이가 살던 시절 이 지역이 건조한 사바나였음을 시사하는 결과다. 인류가 침팬지와의 공통조상에서 진화하게 된 계기가 기후변화라는 시나리오와 잘 들어맞는다. 타웅 아이가 발견된 석회석 지대는 그동안 동굴의 퇴적층으로 추정됐으나 벌과 개미 등 다양한 곤충의 생흔화석과 식물뿌리 화석 등이 많이 발견되면서 당시 노출된 토양 상태로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번 벌집화석 발굴 역시 이런 가능성을 뒷받침한다. 특히 벌이 집을 만들 때 재료로 가져다 쓴 식물체 등 유기물은 당시 생태계와 기후를 추측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연구자들은 논문에서 “동굴 모형에 따르면 이곳에서 추가로 화석이 나오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그러나 이곳이 노출된 땅이었다면 수백m 퇴적층에 걸쳐 많은 유인원 화석이 묻혀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다들 아직 수백 만 년 전 사람 뼈를 찾을 수 있다는 꿈을 버리지 못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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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台大名師鄭喬丹 發表在 痞客邦 留言(0) 人氣()